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준비하라:2020 스톡홀름 평화와 개발 포럼 참여 리포트 - A 윤지영 TEPI 책임연구원 2년전 5월, 개인적으로 참여하고 있던 연구 과제의 현지 조사 수행을 위해 처음 찾았던 스톡홀름의 공기는 청명하다 못해 달큼하기까지 했다. 벚꽃 만발한 거리에서 마주치는 이들의 얼굴에는 긴 겨울 끝에 맞이한 햇살을 최대한 누리겠다는 어떤 비장함 마저 엿보이는 듯했다. 곳곳에서 느껴지는 도시의 생동감은 처음 방문한 이방인의 긴장감까지 누그러뜨렸다. ‘스웨덴 정부가 평화와 개발 정책을 어떻게 결합시켜 국제개발협력 현장에서 실천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나선 길인만큼 새로운 주제를 파고들어야 한다는 부담이 꽤 컸음에도 불구하고, 꽉꽉 채워진 약 일주일 간의 빠듯한 일정을 소풍 가는 기분으로 보냈다. 100년 넘게 맥주 양조장으로 이용되었다는 뮌헨브리게리에트(Münchenbryggeriet)라는 곳에서 첫 방문 일정이 시작된 것이 나들이 같은 출장의 기억을 빚어준 일등공신이었으리라 짐작해본다. 세련된 연회장에 온 듯한 독특한 경관을 지닌 공간에서 처음으로 경험해본 ‘스톡홀름 평화와 개발 포럼(Stockholm Forum on Peace and Development)’은 ‘이런 포럼이라면 일정을 쪼개 참여한 보람이 있지’라는 첫인상을 남길 만큼 풍성한 논의와 다양한 배움이 교차하는 현장이었다. 그 기억을 바탕으로, 이번 글에서는 ‘코로나19 시대의 지속적 평화’를 주제로 지난 5월에 열린 2020 스톡홀름 평화와 개발 포럼의 기록을 좇아 포럼의 주요 메시지와 시사하는 점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스톡홀름 평화와 개발 포럼 2019 (PC: SIPRI) 목차 시프리 스톡홀름 평화와 개발 포럼 2020 여성, 평화, 안보 의제 20년의 교훈 코로나19 시대의 피스빌더(Peacebuilder), 여성과 청년을 주목해야 포스트 코로나의 평화구축, 미사여구를 넘어 현실에 존재하려면 시프리 스톡홀름 평화와 개발 포럼 2020 스톡홀름 평화와 개발 포럼은 분쟁, 군비통제 및 군축에 관한 정통성을 보유한 국제 연구기관인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 이하 시프리)가 스웨덴 외교부와 함께 2014년부터 매년 개최하고 있는 국제 포럼이다. 개발과 인도주의, 평화구축과 안보 분야에 대한 국제사회의 논의와 교류를 위한 플랫폼으로서 정부, 국제기구, 싱크탱크, 시민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초기에는 ‘스톡홀름 안보개발포럼(Stockholm Forum on Security and Development)’이라는 이름의 소규모 워크숍 시리즈로 시작했다. 점차 단순한 안보지향적 시각에서 지속가능한 평화에 대한 관심으로 진화한 국제 담론을 반영하게 되었다. 이후 평화와 개발 담론의 국제적 교류를 위한 다일제 글로벌 포럼으로 성장했다. 국내외 평화구축을 위해 노력하는 실천가들의 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명칭도 2017년 ‘스톡홀름 평화와 개발 포럼’으로 변경됐다. 주제는 평화와 안보에 대한 국제정책 담론을 반영한 주제들을 다루어 왔다. 2014년 ‘폭력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violence)’, 2017년 ‘평화의 지속화를 위해 무엇이 효과가 있을까?(Sustaining Peace: What works?)’, 내가 참여했던 2018년에는 ‘평화의 정치(The Politics of Peace)’, 2019년에는 ‘위기대응부터 평화구축까지, 시너지를 내려면(From crisis response to peacebuilding: Achieving synergies)’ 등이 있었다. 올해 7회차를 맞이한 포럼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사상 처음으로 화상 형식으로 열렸다. 주제 역시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아 ‘코로나19 시대의 지속적 평화(Sustaining Peace in the Time of COVID-19)’라는 타이틀로 지난 5월 11일부터 22일까지 온라인으로 개최되었다. 평화구축에 대한 세계적인 전문가들의 연설과 토론을 공유하는 공개 세션과, 정부 관계자, 연구자, 시민사회 전문가들 간의 비공개 토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공개 세션은 11일부터 20일까지 8일간(주말 제외) 이루어졌으며 시프리의 유튜브 채널에서 생중계되었다.[1] 155개 이상의 국가에서 3,500명 이상의 참가자가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시프리의 얀 엘리아슨(Jan Eliasson) 운영위원장은 포럼 셋째날에 열린 ‘코로나19 시대의 지속적 평화’에 대한 고위급 세션에서 코로나19 발생 후 이번 포럼의 전면 취소 계획을 검토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스웨덴 외교부 장관과 함께 온라인 형태로 전환할 것을 신속히 결정했고, 오히려 이 결정이 코로나19가 불러온 불확실성에 대한 토론과 분석을 나누고자 하는 참여자들의 욕구를 반영할 수 있는 선택이 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오늘날의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정상성(normality)’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많은 이들의 갈망이 이번 포럼을 성사시켰다는 말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는 코로나19가 이미 대유행 이전에 전 세계적으로 누적되어 있던 광범위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을 폭발적으로 심화시켰으며, 이로 인해 가장 보호받지 못한 이들의 취약성을 증가시켰음을 지적했다. 포럼 참가자들에게 코로나19 시대의 평화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단기적 관점과 장기적 관점 모두를 장착해야 함을 요구하며, 공동의 문제에 대한 공동의 해결책을 찾는 장으로서 이번 포럼이 의미 있는 자리가 될 수 있기를 당부했다.포럼은 전체적으로 코로나19 발생이 폭력의 복잡성과 장기화를 부각시키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기존의 국제질서의 한계와 국제사회의 역할에 대한 의문이 더욱 증폭되었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감염병 확산은 국제적 리스크 관리에 이용가능한 국가별 역량과 자원의 차이를 적나라하게 노출시켰으며, 초국적 위기 해결을 위한 효과적인 대응은 고립적으로 수행될 수 없음을 강조했다. 기후변화, 식량위기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에 대해서도 공동 행동을 통한 해결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특히 분쟁에 영향을 받는 국가와 사람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연대가 절실함을 호소하며, 코로나19가 우리의 인류애와 국제협력에 대한 헌신을 시험하고 있음을 역설했다. 포럼을 관통하는 핵심 질문은 아래와 같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지정학적 세계질서 속에서 평화구축을 위한 다자체제 역량의 주요 도전과제는 무엇인가? 코로나19 대유행은 분쟁에 영향 받는 국가들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평화구축 노력이 어떻게 이들의 회복을 지원할 수 있을까? 기후변화에서부터 폭력적 극단주의로 이어지는 추가 위기를 막기 위해 다자체제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인권이 우리 대응의 중심이 되도록 보장할 수 있는가? 의사결정과정에서 여성의 참여를 어떻게 확대시킬 수 있는가? 변화를 촉진하는 데 있어서 청년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포럼 기간 내내 매일의 세션 개요를 안내하는 주최측의 친절한 메일을 받으며 오늘은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갈까 기대를 품었으나, 현실적으로 모든 공개 세션을 시청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7시간의 시차로 인해 대부분의 공개 세션은 한국 시각 밤 9시 이후에 생중계되었다!) 포럼 주제 전반을 아우르는 기조연설과, 올해 채택 20주년을 맞는 여성, 평화, 안보에 관한 유엔안보리결의안 1325호 관련 세션, 평화구축 과정에서 여성과 청년, 시민사회의 참여 확대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들여다보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평화구축 노력이 놓치지 말아야 할 지점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기회로 삼았다. 이 글에서는 분쟁취약국의 현실, 여성과 청년의 참여를 강조한 두 세션의 내용을 집중적으로 다루도록 하겠다. 여성, 평화, 안보 의제 20년의 교훈 [2] 포럼 첫째 날, 포럼에 대한 간략한 소개 후 여성, 평화, 안보(Women, Peace and Security, 이하 WPS) 의제에 대한 세션이 첫 시작을 열었다. 이 자리는 크빈나 재단(Kvinna till Kvinna Foundation) [3], 인터내셔널 얼럿 [4], 시프리, 스웨덴 외교부의 공동주최로 이루어졌고, WPS에 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325호의 채택 20주년을 기념하며 WPS 의제의 성과와 도전과제를 평가하는 시간으로 마련되었다. 사회를 맡은 스웨덴 여성 조정관 네트워크(Swedish Network of Women Mediators)의 샤로타 스페어Charlotta Sparre)는 개회사에서 “이번 세션이 분쟁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 평화구축 활동가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이들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에 대해 시민사회, 정부, 유엔 대표들과 논의하고자 준비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크빈나 재단과 인터내셔널 알럿이 분쟁에 영향을 받는 나라의 여성들은 WPS 의제를 어떻게 경험하는지에 대해 각각 실시한 연구 소개가 이어졌다. 현장에서 여성 평화구축 활동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을 공유하고, WPS 의제가 완전히 이행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권고를 담고 있다. “여성들은 ‘참여’가 국가에 대한 의무이자 권리임을 알아야 하며, 이는 남성이 주는 선물이 아니다." "Women need to know [that] participation is a right and a duty toward her country and it’s not a gift given by men.” - 크빈나 재단의 『A Right, Not a Gift』 연구에 참여한 시리아 여성의 말 발표에 따르면, 크빈나재단이 실시한 연구에 참여한 많은 여성들이 WPS 의제가 자국의 여성 인권 증진을 위한 틀을 제공하는 데 있어서 매우 가치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WPS 의제 이행 과정에서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점 또한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보고서는 여성 평화구축 활동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WPS 의제에 ①여성의 경제적 기회와 참여에 관한 차별성 분석과, ②폭력적인 극단주의와 위축된 시민 공간으로 인해 여성이 직면한 불안정에 대한 심층적 분석이 통합되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한다. 인터내셔널 알럿의 니드예 소우(Ndeye Sow)는 자신들이 수행한 연구 결과, WPS 의제의 완전한 이행을 방해하는 장애요인으로 가부장적이고 제한적인 성규범을 지적하고, WPS 의제의 진전을 가로막는 가부장적 성 규범을 변화시키기 위해 남성들과 남성성 중심의 사회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우는 ‘유엔결의안 1325호 이행을 위한 국가행동계획(National Action Plan)이 종종 국가의 평판을 높이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한 인터뷰 대상자의 발언을 소개하면서 WPS 의제에 대한 국가들의 정치적 의지와 자원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가부장적 성규범과 제도화된 남성 특권을 부각시키고, 도전하여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남성특권사회의 ‘저항자’와 수문장과 보다 전략적으로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 "It is important to engage more strategically with male ‘resistors’ and gatekeepers to highlight, challenge and transform patriarchal gender norms and institutionalized male privilege.” “우리는 여성 조직을 위한 유연하고, 접근가능하며,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자금 지원에 대한 확고한 약속이 필요하다." "We need a firm commitment to flexible, accessible, long-term and stable funding for women's organizations).” – 니드예 소우, 인터네셔널 얼럿 젠더팀 책임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레이마 보위(Leymah Gbowee)는 국가행동계획을 이행하려면 여성 조직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정된 자금 지원을 받기 위해 서로 경쟁하게 되는 라이베리아의 여성조직들이 겪는 어려움을 공유하며 평화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군국주의에서 벗어나 인간안보 차원에서 여성, 평화, 안보 개념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에서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투자하고 경제에 투자하는 것이 마땅하므로, 여성들이 살아남기 위해 마을 촌장이나 부족장에게 여성의 경제적 권한에 대한 ‘승인’을 요청할 필요가 없다는 말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국가행동계획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반드시 자원을 동반해야 한다. 평화는 보석이고 이에 대해 확실한 투자를 해야 한다." "If we are serious about National Action Plans, it must be accompanied by resources. Peace is a gem and you have to put solid investment in peace.” – 레이마 보위, 노벨 평화상 수상자 페 올슨 프리드(Per Olsson Fridh) 스웨덴 외교부 국제개발협력 국무장관은 페미니즘 외교 정책을 채택한 최초의 정부를 대표해 정부, 공여자, 국제사회가 WPS 의제를 책임 있게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국가행동계획을 수립했다고 해서 규범적인 의제에 머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행 의제로 행동을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프리카 대륙 북동부 지역(The Horn of Africa) 유엔 사무총장 특별대표인 파르페 오낭가-아냥가(Parfait Onanga-Anyanga)는 남성이 WPS 의제에 참여하고 여성 참여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데 동의했다. “우리가 계속해서 세계의 절반을 이루는 여성을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얼마나 인류에게 해를 끼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더 많은 남성 권력자가 필요하다. 여성과 소녀들 또한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완전히 참여해야 한다." "We need more men who are mostly in positions of power to understand we are doing a disservice to humanity if we continue to keep half our society away from decision-making processes. Women and girls must be fully engaged in the work we are doing).” – 파르페 오낭가-아냥가, 아프리카 대륙 북동부 지역 유엔 사무총장 특별대표 세션 패널들은 WPS 의제가 여성들의 평화구축 참여를 위한 공간을 열었지만 여전히 국가행동계획을 비롯한 의제 이행에 난제가 분명히 있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더불어 코로나19가 가져온 불확실성이 여성 평화구축 활동가들의 공간을 더욱 축소하고 관련 자원 부족을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그 어느 때보다 이들이 평화 프로세스와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성 평화구축 활동가, 인권 옹호자들과 연대해 국제사회의 평화구축 업무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공동의 임무임을 재확인하면서, 패널들은 WPS 결의안 채택 20년의 교훈을 활용하여 향후 10년 내에 1325 결의안 이행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중지를 모았다. 윤지영 TEPI 책임연구원 2편에서 계속 (클릭) [1] 포럼 영상은 여기서 다시보기 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user/SIPRIorg.[2] 세션 영상은 여기서 다시보기 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MjnAfdo0OQ&list=PLhYE8cjKxVOO4lloiPBrBnOiffGbptrHn&index=2&t=213s[3] 크빈나 재단(The Kvinna till Kvinna Foundation)은 여성의 인권 증진을 위해 활동하는 스웨덴에 소재하고 있는 재단 이다. Kvinna till Kvinna란 “여자 대 여자” (영어: woman to woman)을 의미한다.[4] 인터내셔널 얼럿(International Alert)은 분쟁해결과 평화구축을 위해 활동하는 영국의 비영리조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