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준비하라:2020 스톡홀름 평화와 개발 포럼 참여 리포트 - B 윤지영 TEPI 책임연구원 시프리 스톡홀름 평화와 개발 포럼 2020 여성, 평화, 안보 의제 20년의 교훈 코로나19 시대의 피스빌더(Peacebuilder), 여성과 청년을 주목해야 포스트 코로나의 평화구축, 미사여구를 넘어 현실에 존재하려면 PHOTO CREDIT: SIPRI 코로나19 시대의 피스빌더(Peacebuilder), 여성과 청년을 주목해야 포럼 셋째날 열린 ‘코로나19 시대의 지속적 평화’에 대한 고위급 세션에서 엘만평화센터(Elman Peace Center)의 일와드 엘만(Ilwad Elman)이 기조연설을 맡았다.[1] 엘만은 소말리아 모가디슈(Mogadishu) 태생으로 성장기 상당 기간을 캐나다에서 보냈지만, 평화활동가인 아버지의 사망 이후 2010년, 내전 중이던 소말리아로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분쟁 중 성폭력 생존자들을 위한 센터를 설립했다. 이후 평화구축과 안보 분야에서 여성과 청년의 참여 확대를 위해 일하고 있다. 기조연설 내내 엘만의 목소리는 강경하면서도 절실함이 묻어나며 호소력이 넘쳤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24시간 내내 전세계 언론이 비말 접촉을 통한 구강 전파의 위험성을 말하고 있지만, 실상 코로나19와 동시에 일어난 다자주의의 위기에 대해서는 전통적인 정책 공간 밖에서 충분히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오늘 포럼에 참가하는 모두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어떻게 다자주의 체제를 약화시켰으며 국제적 신뢰의 결핍을 증폭시켰는지와 함께,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국가주의의 민낯을 직접 목격했을 것이라는 공감을 전했다. 유엔 사무총장의 글로벌 종전과 휴전 요구에 대한 환영은 잠시 존재했을 뿐,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군사작전을 중단시키지 않고 있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침묵 속에서 우리가 함께 행동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음을 강력히 비판했다. 엘만는 분쟁이 여성과 소녀들의 안전과 인권에 미치는 악영향을 언급하며, 한 국가의 평화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는 여성이 그 사회에서 얼마나 잘 대우받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라 말했다. 이어 코로나19가 젠더에 끼치는 영향에 주목할 것을 요청하면서 “전세계 보건 의료 인력의 70%가 여성이며, 과거의 보건위기에서도 지역의 여성 지도자들이 전염 주기를 단축시키고 생명을 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여성 지도자들은 보건 분야를 넘어서서 세계적인 지도력을 발휘하며 먼저 행동에 나서고 있으며,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위기 앞에서 이를 중단하기 위한 노력에 대담하게 임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엘만은 코로나19가 유엔의 베이징행동강령 선언 25주년이자 유엔결의안 1325호 채택 20주년을 맞는 올해 발생한 것의 우연성을 짚으며,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과정에서도 결의안 1325호와 베이징행동강령 이행을 위한 젠더 및 갈등 감수성에 기반한 접근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말리아에서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30년 동안 전쟁을 치루었고 지금도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소말리아에서 4천2백만~6천6백만의 아이들이 코로나19로 인해 극심한 가난에 처하게 될 것이 몹시 두렵다는 고백도 털어놓았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맨손으로 생계와 생존을 위해 거리로 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즐비하며, 감염병과의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포기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도 흘러나왔다. 소말리아에게 코로나19는 생명을 위협하는 많은 위기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말을 전할 때 엘만의 목소리는 더욱 격양되었다. 국제사회가 신속한 공동 행동을 취하는 데 있어 실패한다면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협하고 회복하기 어려운 파괴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가 덧붙여졌다. "우리가 세계의 여러 지도자들과 인플루언서들에게 반복적으로 듣는 것이 ‘바이러스는 차별하지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바이러스는 차별하지 않을 수 있으나 세계는 차별한다." "One quote that we have repeatedly heard and seen from different leaders and influencers is that the virus doesn't discriminate. But this is only half of the truth. The virus may not discriminate, but our world sure does.” 엘만은 소말리아를 비롯한 분쟁취약국이 코로나19와 같은 초국적 위기에 대처하려면 보건 관리와 기후 탄력적 경제(Climate Resilient Economy)에 대해 지속적인 장기적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 또한 강조했다. 코로나19 위기가 야기하는 보건, 기후, 평화 문제의 교차점은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을 위해 계속하여 투자해야 할 필요성을 강화시킨다고 언급하며 개발과 안보의제의 연계(Development and Security Nexus)의 중요성을 호소했다. 마지막으로 엘만은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대응과 평화구축 활동에 있어 여성과 청년이 실질적인 해결책을 만들 수 있는 행위자임을 부각시키며, 청년, 평화 및 안보에 관한 유엔결의안 2250호의 이행과 2018년 유엔인구기금(UNFPA)가 발간한 청년, 평화와 안보에 관한 연구 보고서인 The Missing Peace 보고서의 권고를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2] 코로나19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에 대한 애도와 전세계 최전방에서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감사를 전하는 것으로 엘만의 연설은 마무리되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해답을 가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바퀴를 재발명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대유행이 발생할 경우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기다려왔다. 여성과 청년, 평화와 안보의 유산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디지털 혁신의 축복과 결합되어, 우리에게 필요한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위대한 공동체를 제공해주고 있다. 따라서, 나는 유엔 결의안 2250호와 The Missing Peace 보고서의 권고사항을 즉각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 "We must remember we have more answers than we think, and it's not necessary to reinvent the wheel. We have been preparing and waiting to be activated in the event of a pandemic like this. The women and youth, peace and security legacy combined with the digital innovations we are blessed with today has given us a bigger and greater community of actors available to deliver the practical realistic actions we need now. So, I urge to move the UN Security Council resolution 2250 and recommendations from ‘The missing peace report’ promptly to delivery.” 앤 린드(Ann Linde) 스웨덴 외교부 장관 역시 이어진 발언에서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국제사회의 공조와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엘만의 문제의식에 동의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코로나19 위기와 연계된 평화와 안보 위기 대응에 대해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사용하여 보다 적극적인 리더십을 행사해 주길 촉구했다. 또한 다른 여성 외교부 장관들과 함께 여성들이 코로나19 위기에 받고 있는 영향에 대한 결의안을 작성하여 유엔에 제출한 사실을 공유하며,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국제사회가 젠더 감수성을 갖출 필요성을 피력했다. 기술한 두 세션 외에도 포럼 전반적으로 코로나19 시대의 평화구축 과정에서 여성과 청년의 참여가 중요한 이유와 이들의 역할에 대한 재확인이 이루어졌다. 특히 분쟁취약국에서 코로나19 발생으로 인한 일자리 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가 여성과 청년인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공유되었고, 이들 국가의 경제회복력을 높이기 위해 여성과 청년에 대한 장기적인 지원을 촉구하는 메시지가 일관되게 전해졌다. 평화구축과 개발의 리더로서 여성과 청년을 장려하는 것이 국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시민사회 공간 축소를 예방하고 코로나19 시대의 포용성을 강화하는 방안이라는 주장이 크게 공감을 얻었다. 포스트 코로나의 평화구축, 미사여구를 넘어 현실에 존재하려면 8일간 열린 40개 이상의 공개세션에서는 이 외에도 폭력과 코로나19 위기의 연계성, 기후변화, 분쟁취약국의 현실, 유엔 평화작전의 코로나19 대응 활동, 새로운 피스빌더와 파트너십의 필요성, 디지털 혁신 활용방안 등 코로나19 시대의 평화구축에 대한 다양한 토론이 펼쳐졌다. 종합적으로 포럼 전체를 아우르는 핵심 성찰은 코로나19를 비롯해 국제사회가 지금까지 직면해 온 위기들이 많은 면에서 예방이 가능했으며, 기존의 국제 안보 시스템은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많은 연사들이 코로나19를 세계의 중추적 순간(pivot)으로 지목하며 그동안 국제사회가 분쟁과 갈등해결을 다루어 온 방식과 전략을 돌아보고 재설정할 수 있는 기회로 간주했지만, 한편으로는 엘만이 말했듯 코로나19는 어느 나라와 사람들에게는 이미 그들이 겪고 있는 수많은 위험 리스트에 추가되는 또 다른 위험일 뿐이다. 코로나19 위기는 국가와 국제사회 각각의 의무와 역할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공개세션을 마무리하는 토론에서 이번 포럼 전체를 기획하고 조직한 시프리의 야고 살몬(Jago Salmon)은 “포럼을 통해 우리는 글로벌과 지역사회가 모이는 특별한 순간을 경험하고 있으며, 인도주의적 발전과 평화의 넥서스라는 미사여구나 정책을 넘어 평화구축이 현실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확인했다. 평화구축은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과 동시에 위기 예방을 위한 제도를 강화하는 것이다. 평화구축은 국가의 오너십과 국가 행위자에 달려있지만, 동시에 국제적인 자원 공급 능력이 필수적이다. 포럼에 참여한 우리 모두가 피스빌더이며, 평화구축을 위한 자금과 시스템 조성의 이해당사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포럼에서 들은 시민사회, 평화유지군, 청년과 여성들의 감동적인 사례에 대한 영감에서 나아가 더 큰 행동과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라는 말로 국제사회와 개별 국가, 모든 피스빌더들의 적극적인 노력을 당부했다. 공개세션을 닫으며 아프리카연합(African Union)의 청년 대표인 아야 체비(Aya Chebbi)의 발언이 주목을 받았다. 체비는 이번 스톡홀름 포럼이 화상 형식으로 성공적으로 개최된 점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디지털 혁명을 통한 사이버 공간 확충에 대한 전망에 동의하면서도, 농촌 지역의 청년, 실향민, 난민, 장애인 등 세계 인구의 절반, 특히 아프리카 인구의 70%가 온라인에 접속할 수 없는 현실을 염두해야 함을 지적했다. 코로나 위기로 인해 디지털 공간이 요구될 수밖에 없지만, ‘포용(inclusion)’을 이야기한다면 이번 포럼 같은 자리 뿐만 아니라 교육권 차원에서도 권리를 누릴 수 없는 이들이 존재함을 명심해 줄 것을 호소함으로써 함께 고민할 지점을 짚었다. 또한, 엘만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환기시키며, 이들이 분쟁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폭력을 중단시킴으로써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결정을 내려줄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각성하고 사람들을 위해 일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의 존재 이유이다.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고려한 결정을 책임진다면, 폭력을 멈추고 총성을 거두어야 한다. 봉쇄와 사회적 거리두기, 물리적 거리두기에도 총성이 침묵할 수 없다면 대체 언제 침묵할 수 있단 말인가? 아프리카에는 분쟁이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다. 코로나바이러스도 이들을 방해하지 못했다. 분쟁은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 "I think the UN security council needs to wake up honestly, and serve the people. They are there to serve and really take the decision that delivers for the people and that takes people's lives and safety in consideration. If they really have that responsibility, then they need to stop violence. Just stop violence and silence the guns. If they cannot be silenced when we have lockdowns and social distancing and physical distancing, when are they going to be silenced? Yet in Africa, we have conflicts continuing. The coronavirus didn't disrupt them. They are continuing.” 이 글을 쓰기 위해 온라인으로 포럼 영상들을 되돌려보며 스스로에게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평화구축은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 질문을 던져보았다. 정리되지 않은 문장들과 상념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 눈앞에서 피 흘리며 쓰러지는 이들을 목격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시시때때로 터지는 포탄 소리에 쿵쾅 거리는 심장을 24시간 달고 있어야 하는 삶은 어떤 삶인가. 코로나19 감염보다 굶어 죽는 것이 더 두려워 길을 나설 수밖에 없는 이의 일상 앞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는 확진자 발생 알람 소리에 얼른 확인 버튼을 누르는 나의 일상은 무엇을 말하는가. 평화와 개발을 공부하고 업으로 삼고 있지만, 정작 분쟁 현장의 평화활동가의 안전 보장과 생계 유지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내 삶의 반경이 지금 이 순간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평화를 만들어가는 이의 삶에 교차되지 못한다는 생각에 어느덧 부끄러운 자괴감이 삐죽 고개를 내밀고 만다. 평화와 개발의 텍스트 너머에 실제 존재하고 있는 누군가의 치열한 삶을 상상해 보는 것으로 포럼이 던진 고민거리를 끌어안아본다. ‘코로나19 위기는 새로운 위험이 아니라, 이미 존재해온,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수많은 위기 중 하나일 뿐’이라는 엘만의 비탄한 목소리가 다시 강렬하게 가슴을 파고 든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소위 잘사는 나라 국민들의 삶을 일시정지 시킨 코로나도 멈추게 하지 못한 총성과 폭력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위해 국제사회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머리속에 떠오르는 대답은 오로지 하나 뿐이다. 더 없이 명료하다. 전쟁을 종식하는 것. 무기를 내려놓고 폭력과 싸움을 멈추는 것.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누군가의 명령을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준비하라’로 전환하는 것. 폭력을 이기는 비폭력과 평화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길에 함께 하는 것. 포럼에서도 거듭 강조되었듯이 올해는 베이징행동강령 채택 25주년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325호 채택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동시에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의 해이기도 하다. 국경 너머의 평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지금 여기에서 도모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한다. 엎치락 뒤치락 여전한 남북 관계의 긴장 속에서 어떤 평화를 만들 수 있는지 상상하기란 쉽지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우리는 평화를 향해 차곡차곡 한걸음 한걸음 쌓아 나아가고 있다. 그 길 위에 함께 올라선 이들을 놓치지 않고, 평화의 힘을 믿는 더 많은 이들을 만나가다 보면 언젠가 전쟁을 멈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까. 전쟁과 분단의 역사를 딛고 여성과 청년이 평화구축의 주축이 되어 남과 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장면을 상상해보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짜릿하다. 윤지영 TEPI 책임연구원 1편으로 돌아가기 (클릭) [1] https://www.youtube.com/watch?v=3fzxGxaO7VI&feature=youtu.be[2] UNFPA(2018). The Missing Peace: Independent progress study on youth, peace and secur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