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기념관 소개] 파리 강제이송희생자 기념관 (Mémorial des Martyrs de la Déportation) 프랑스 파리 노틀담 성당 뒤편에 숨어 있는 강제이송희생자기념관은 '우리'의 광기를 성찰하는 곳이다. 각국 수도에 높이 솟아있는 전쟁기념관들과 달리 이곳은 웬만한 발걸음이라면 찾기도 힘들게 낮게 가려져서 존재한다. 안내표지조차 찾기 힘들다. 이곳은 프랑스 국군의 위용이나 전승을 기념하는 곳이 아니다. 이 곳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나치 권력에 부역했던 프랑스 비시정부가 집단수용소로 보냈던, 처형장으로 추방했던 20만여 명의 유대인들을 기억하는 곳이다. 희생자들은 이름 없이 20만개의 촛불로 안장되고 기억되고 있다. 프랑스의 교사이자 작가 겸 건축가였던 죠르쥬앙리 팽구송 Georges-Henri Pingusson (1894–1978)이 설계해 1962년에 열었다. 한국이 세계 두 번째로 큰 규모라고 자랑하는, 기괴하게도 미국의 거대한 군사기지와 대한민국 국방부 사이에 위치한 용산 전쟁기념관과 모든 면에서 대조를 이루는 곳이다. 이런 곳이 한국에 만들어질 때가 온다면, 그 기념관은 아마도 한국이 베트남전쟁 참전을 어떻게 기억하는가를 다루어야 할 것이다. 전쟁을 과시하거나 자랑하는 일이 없이... 강제이송희생자기념관은 우선 입구부터 찾기 힘들다. 크기도 너무 작고 지상보다 낮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그렇다. 입구를 찾아도 대열을 짓거나 자랑스럽게 들어가기 불가능하게 좁은 통로로 되어 있다. 파리 세느강과 바로 닿아 있어서 강물의 허망한 흐름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세느강이 지척에 보이는, 유대인 수감자들이 아마도 탈출을 갈망했던 그 자리에는 날카롭고 시커먼 쇠창살들이 위압감을 주며 있다. 친절한 설명이나 안내문은 일체 없다. 존재하는 사람들의 글은 추방된 곳이다. 지금의 사람들은 그저 그 자리에 있고, 느끼고, 기억하고 성찰하도록 초청된다. 두 사람도 아니고 한 사람씩 들어가고 나올 수 있다. 지키는 사람도 안내하는 사람도 없다. 화려한 파리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완전히 다른 공간이 열린다. 벽에 아무렇게나 쓰인 몇 개 안되는 글귀는 집단수용소 수감자들이 학살당하기 전에 썼음직한 ‘벽에 손톱으로 피를 흘리며 썼을 글씨체’로 쓰여 있다. 그리고 20만 명의 영혼이 모셔진 지하 무덤에는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부켄발트, 슈투트호프 등 나치의 악명높은 집단수용소-처형장이 기록되어 있다. 그 옆에는 용서해주세요, 기억이 살도록 잊지 말아 주세요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나치 수용소에 처형된 20만명의 프랑스인을 기억"한다고 쓰여있다. 유대인이라는 표기가 없다. 무슨 의미인지 아마도 방문자는 소스라치듯 알아차릴 듯 하다. 여기에 발을 들인 방문객은 모두 말을 멈춘다. 숨도 멎는 듯 하다. 하늘은 잔인하게 맑게 보인다. 벽 한 쪽에, 나치를 지지했던 프랑스인들에 의해 나치의 한 처형장으로 끌려갔던 시인 데스노는 “전쟁을 미워하는 마음”이라는 시를 남겼다. 지금도 이 강제이송기념관의 지하 감옥 벽에 손톱 글씨로 새겨져 있다. 나는 당신의 꿈을 얼마나 많이 꾸었는지 몰라요.내가 꿈속에서 얼마나 많이 걸었는지,당신의 그림자를 얼마나 많이 사랑했는지,그리고 나에게 당신의 흔적이 하나도 남지 않았음을.나에게 남겨진 것은 이제 그림자들 사이의 그림자들,그림자보다 몇 백배 더 많은 그림자가 되어버린,당신의 찬란한 삶으로 찾아가고 또 찾아갈 그림자가 되고자. 다른 시는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 점점 기억나지 않음을 괴로워하고 있다. 그림자로 전락하는 수용소에서 그리운 이의 기억이 사라지는 고통을 새겼다. 한국의 베트남전쟁에 대해 이러한 기억이 있을까? 용산전쟁기념관과 같은 전쟁기념시설은 전통적으로 “전장에서의 위대한 행동”과 “전쟁 영웅”에 대한 기억을 중심에 놓고 ‘전쟁의 참상’을 위대한 행동과 영웅의 정당화를 위해 배치한다. ‘전쟁의 참상’은 대부분의 경우 자국의 피해에 초점을 맞추며 ‘타인‘에 대한 가해는 경시된다. 때문에 전쟁기념관은 우리 ‘국가’와 ‘민족’에 대한 무조건적인 소속감을 불러일으킨다. 전쟁은 그런 소속감으로 존속한다. 이에 비해 파리 강제이송희생자기념관과 같은 평화기념관은 전쟁에 대한 국경을 넘은 윤리적 성찰과 전쟁을 막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 거대한 폭력에 대한 시민의 성찰, 소속감에 대한 반성에 초점을 맞춘다. 협소한 국가관이나 민족의식보다 더 넓고 깊은 역사적, 윤리적 성찰을 제공한다. 전쟁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전쟁 중의 자국 또는 ‘우리’의 광기와 범죄를 어떻게 기억하고 성찰할 지에 대해 파리 강제이송희생자기념관은 조용히, 숨어 있으면서 말을 걸고 있다. (사진: 이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