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김주원 / 피스모모 회원 10월의 마지막 밤, 홍은동 언덕에서 “대한민국, 일본, 조선 그 사이의 재일동포”를 주제로 조미수 연구위원님의 발제와 이야기 나눔이 있었습니다. 재일동포 당사자이자 한국과 일본, 여러 지역을 오가며 활동하는 미수님은 일본 내 민족학교 역사부터 지난 여름 교토국제고등학교의 고교야구 우승 보도까지 한국 언론이 보여준 민족학교에 대한 시각을 분석했습니다. 한국에서 교토국제고의 우승에 그토록 열광한 이유와 많은 보도에서 나타나는 국가주의적 시각을 조명하며 '한국계 민족학교'라는 명칭으로 교토국제고의 승리를 찬양하면서도 재일동포의 현실을 간과하는 모순과 아쉬움을 짚어주셨습니다. 한국과 일본 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교토국제고와 달리 일본 내 조선학교는 외국인학교로 분류되어 고교무상화에서 제외되며 지자체 교육보조금이 끊어지거나 노골적인 차별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조선학교는 북한의 교육 체제를 바탕으로 출발했지만 조선어, 조선인 정체성을 기반으로 언어와 문화를 교육하며 재일동포 학생들이 민족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반면 한국학교는 일본 사회에서의 통합을 목표로 학생들에게 일본어와 일본 문화를 함께 교육하고 융화를 기대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렇듯 두 학교의 서로 다른 접근은 재일동포 사회 안에서도 전혀 다른 경험과 궤적을 그리게 합니다. 미수님 역시 조선학교에서의 학창시절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지만, 내부의 모순을 마주하고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 끝없이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고 덧붙였습니다. 피스모모에서 미수님을 알게 된 지 8년이 지났지만 미수의 삶에 오롯이 집중하여 다같이 이야기를 듣는 자리는 처음이라서 “미수”라는 존재를 새롭게 만나는 느낌이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넘어 미수님이 정리해주신 민족학교의 변천사와 현실을 들으며 재일동포 정체성이란 단순히 국적이나 출신을 넘어 역사적 맥락과 사회적 의미가 복합적으로 얽힌 개념이라는 점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국적과 일본의 특별영주권을 둘 다 갖는 게 재일동포의 특혜라고 비판하기 전에, 한국 정부의 지원에서 배제되거나 일본에서 2등 시민으로 위치한 역사를 헤아리고 고유한 맥락을 존중하는 노력이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요. “일본인이세요, 한국인이세요?” 이 질문에 둘 다 맞기도 하고 어쩌면 둘 다 아니기도 한 미수의 삶을 통해 익숙한 또다른 경험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바이섹슈얼은 동성을 만날지 이성을 만날건지 한쪽을 택하도록 강요받거나 충분히 퀴어하지 않다는 비난과 바이포비아를 마주합니다. 이분법적 성별에서 벗어난 논바이너리(non-binary) 당사자들 역시 그들의 정체성을 다시 이분법에 가두는 “그래서 여자예요, 남자예요?”라는 질문을 받고는 합니다. 한국적인, 일본다운, 여성스러움, 남성스러움 등 익숙하고 명쾌하게 똑 떨어지는 모습이어야만 안심하는 사회의 시선이 결국 맞닿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사실 온오프라인으로 세미나에 모인 분들과 미수님에게 제가 떠올린 지점을 공유하기 전에 혹시나 동감하기 어렵거나 엉뚱한 주제라고 생각하실까봐 걱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미수님은 오히려 미수님이 나눠준 이야기가 타자화되지 않고 제 마음에 와닿아서 기쁘고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해주셨습니다. 용기를 내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 밤에 힘을 얻으며 이렇게 함께 대화하고 교차하는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생각해봅니다. 경계에 선, 혹은 경계 자체가 정체성인 이들이 마주하는 사회적 압박과 이해 없는 질문에서 유사성을 찾고, 폭력의 구조를 허무는 지혜를 모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발제 | 조미수 TEPI 연구위원일본 도쿄에서 나고 자란 재일동포(재일조선인) 3세이다. 평화활동과 국제교류를 하는 일본 시민단체에서 활동한 후 2014년부터 한국에 살고 있다. 현재는 한국과 일본 시민이 만나는 스터디투어 코디네이터 및 통역, 뉴스 번역, KBS 월드라디오 일본어방송 진행자 등을 맡고 있다. 기록 | 김주원 피스모모 회원피스모모 활동가이자 평화교육 진행자로 4년을 함께했다. 여전히 모모를 아끼고 지지하는 회원으로 동행하고 있다. 지금은 보험설계사로 일하면서 신뢰할 수 있는 금융 정보를 찾는 공익활동가, 예술가,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농난청인 등을 위해 개인상담과 단체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instagram.com/jumpwith_j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