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출판된 이 작품을 이제야 만났다. 뒤늦은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이 소설은 놀랍게도 내가 향후 10년간 연구하고 싶은 것들을 일상적인 몇 가지 사건과 대화로 모두 담아냈기 때문이다. 1998년 호찌민시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읽은 바오닌의 『전쟁의 슬픔』 이후, 이런 슬픔의 파도는 처음이다. 베트남 전쟁과 관련하여. “베트남 전쟁”은 잘못 붙여진 이름이다. 한국과 미국이 베트남을 침략한 이 전쟁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명명이 필요하다. 「신짜오, 신짜오」는 우리가 ‘베트남 전쟁’과 어떻게 만나왔는가를 치열하게 묻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세 여성의 만남을 통해 들려진다. 독일 플라우엔에서 친하게 지내는 두 가족, ‘호 아저씨와 응웬 아줌마’와 그 아들 투이, 그리고 한국인 엄마와 아빠와 그들의 딸 ‘나’, 이 소설에서는 이렇게 두 가족이 일주일에 한 번, 식사를 같이한다. 호 아저씨의 담백하고 편안한 요리와 응웬 아줌마의 친절함과 대화 촉진은 이 만남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하지만 어두움이 숙명처럼 서서히 드리우기 시작한다. 화자인 ‘나’가 ‘우리 엄마 아빠’가 서로 말을 안 하고 깎아내리는 사이라고 흉을 볼 때, 투이의 얼굴이 어두워지고, ‘나’의 어린 동생 다연을 보는 응웬 아줌마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늘 잠겨있던 호 아저씨네 서재의 열린 문틈으로 이끌려 들어간 ‘나’는 향이 피어오르는 향로 뒤에서 다섯 명의 가족사진을 발견한다. 그 사진에는 ‘내 또래의 여자아이와 다연이 또래의 아기’가 있었다. ‘응웬 아줌마’와 그녀의 동생, ‘나’는 응웬 아줌마를 이렇게 만난다. 나와 투이가 다니던 학교에서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수업이 있었다. 선생은 “다행히 2차 대전 이후로 이처럼 대규모의 살상이 없었다.”고 말했지만 투이는 “베트남 전쟁이 있었다.”고 선생의 말에 반박한다. ‘나’는 투이의 앎과 말함에 놀란다. ------- ------- 그 수업이 있었던 날, 두 가족은 평소처럼 만나 저녁을 먹고 대화를 나누었다. 어른들의 대화 중에 일본의 식민통치가 언급되었을 때 ‘나’는 한국 학교에서 배웠던 대로 “한국은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나’의 부모는 시선을 피했고 투이의 부모는 화제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려 한다. ‘나’의 아빠는 “네가 대체 뭘 안다고 떠드느냐.”며 소리쳤고 모두의 침묵이 흘렀다. 13살 투이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한국 군인들이 죽였다고 했어.” 응웬 아줌마는 ‘너와는 관계없는 일’이라며 투이를 달랬고, ‘나’의 엄마는 정말 몰랐다며 사과했다. 호 아저씨는 “저는 다 보았어요.”라며 눈시울을 훔치고, ‘나’의 아빠는 “당신이 뭔데 미안해 하냐”며 ‘나’의 엄마를 나무라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저희 형도 죽었어요, 용병이었을 뿐이죠, 다 베트콩으로 보였을 거예요, 전쟁이니까.” 응웬 아줌마가 낮은 소리로 말한다, “일주일 된 아기, 거동 못하는 노인도 베트콩으로 보였을까요?” 계속 항변하려는 아빠에게 엄마가 “당신 제정신이야”라고 외치는 풍경, ‘나’는 그 속에서 말을 잃는다. ------- ------- 그 날 이후 두 가족은 점차 멀어진다. ‘나’의 가족은 독일을 떠났고 시간이 꽤 흐르고 난 어느 날, 서른 셋이 된 ‘나’는 플라우엔을 다시 찾는다. ‘나’의 엄마는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나’를 마주한 응웬 아줌마는 ‘나’와 함께 여기에 서 있는 ‘나의 엄마’를 만난다. 두 여성이 만난 그 순간, 그 자리엔 세 명의 여성이 있다. 그들은 쉼 없이 “신짜오, 신짜오”하면서 재회한다. ‘신짜오’는 ‘안녕하세요’라는 베트남 사람들의 인사말이다. 「신짜오, 신짜오」를 쓴 작가 최은영은 잊혀진 전쟁으로부터 ‘안녕’을 묻는 이웃의 이야기를 찾아냈다. 전쟁에 감추어진 이런 내러티브들은 앞으로 더 깊게 읽힐 것이다. 그럼으로써 추악하게 은폐된 침략전쟁의 진실을 드러내는데 기여할 것이다. ‘베트남 전쟁’은 한국인에게 말을 걸고 있다. 책: 최은영, 『쇼코의 미소』 (문학동네, 2016)에 수록된 단편소설 「신짜오, 신짜오」서평: 이대훈, 2020. 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