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덕 전문위원님이 <에큐메니안>에 기고한 글, "문화적 폭력과 정동의 정치: 미디어가 만들어낸 ‘가상의 적’(2026.04.22)" 을 공유합니다. 평화학자 요한 갈퉁(Johan Galtung)은 폭력의 구조를 세 가지 층위로 나누어 설명한 바 있다.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형태의 ‘물리적 폭력’, 사회 제도와 구조 속에 깊숙이 뿌리내려 불평등을 야기하는 ‘구조적 폭력’, 그리고 이 두 가지 폭력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합리화하는 ‘문화적 폭력’이다. 종교, 사상, 언어, 예술 등의 형태를 띠고 나타나는 문화적 폭력은 우리 내면에 스며들어 폭력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킨다. 우리 시대의 ‘적’은 누구인가를 묻는 것은, 곧 우리 사회가 어떤 문화적 폭력을 통해 누군가를 적으로 규정하고 기꺼이 타자화(他者化)하고 있는지를 묻는 작업이다. 적의 개념은 결코 고정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와 사회적 맥락에 따라 그 얼굴과 수용 방식을 끊임없이 바꾸어 왔다. 그렇다면 고도화된 기술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는 어떤 문화적 폭력의 장(場) 속에서 새로운 적을 마주하고 있는가? 이 질문의 중심에는 우리 삶을 전면적으로 재편하고 있는 ‘미디어화(Mediatization)’ 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 과거 전통적인 의미에서 적의 개념은 주로 국가주의, 이념 대립, 혹은 거시적인 역사적 서술 등 다분히 이성적이고 체계적인 담론의 영역 안에서 빚어졌다. 적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논리와 명분이 필요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적은 이성적 판단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감정’의 영역에서 훨씬 더 쉽고, 빠르고, 폭력적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매일같이 디지털 미디어 환경이 쏟아내는 막대한 정보의 홍수에 노출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때로는 완벽한 무방비 상태로 특정한 폭력과 적의 이미지를 주입받는다. 여기서 핵심적으로 작동하는 기제가 바로 ‘정동(affect)’의 추동이다. 알고리즘을 타고 흐르는 파편화된 이미지들은 사건의 복잡한 맥락을 소거한 채 우리의 신경계를 직접 타격한다. 타인의 고통이나 역사적 비극마저도 스크린 위에서는 찰나에 소비되는 스펙터클한 이미지로 전락한다. 깊은 사유와 공감이 들어설 자리에 즉각적인 분노와 낙인찍기가 자리 잡으면서, 적을 규정하고 싸우는 방식 자체가 본질적으로 변화한 것이다.... 기사 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