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늬 전문위원님의 글을 공유합니다. 본 글은 보건학논집(2025년 12월 31일, The Korean Journal of Public Health - Vol. 62, No. 2, pp.12-44, 김승섭; 문영민; 최하늬; 황윤하 저)에 게재된 논문입니다. 원문 링크는 여기를 클릭하세요. <서론>(1) 차별과 소수자의 몸차별과 소수자의 몸차별의 정의는 ‘둘 이상의 대상을 각각 등급이나 수준 따위의 차이를 두어 구별함’(표준국어대사전)이다. 인간 존재의 다채로움을 생각할 때, 둘 이상의 존재를 구별하는 행동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차별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인간을 대상으로 ‘등급이나 수준’을 매기고, 우월한 존재와 열등한 존재로 나누는 그 위계적 권력 때문이다. Krieger는 차별은 지배 집단이 자신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소수 집단 또는 개인을 “부당하게 대우(unfair treatment)”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1]. 불평등한 권력으로 인해 발생한 차별은, 차별받는 사람들의 행동양식, 생각, 삶을 여러 방면으로 제한하고 억압하며 인종, 젠더, 성적 지향, 종교, 양심, 장애와 같은 여러 이유로 작동한다. 차별은 소수자 집단의 특성을 낙인화하는 정치적 이념에 따라 형성되고 합리화된다. 예를 들어 인종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종종 사용되는 피부색은 진화론적으로 멜라닌 색소의 양에 따라 거주지역의 일조량에 생존 확률이 차이가 났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2]. 이러한 생물학적 차이가 차별로 이어진 것은 16세기 이후 계속된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해 등장한 인종주의라는 차별적 이데올로기를 통해서였다. 인종주의는 과학의 이름으로 피부색에 따라 타고난 능력의 ‘등급이나 수준’을 정하고, 지배하는 우월한 백인과 지배 받아야 하는 열등한 유색인종으로 나누어 차별을 합리화하고 재생산했다 [3]. 이러한 합리화와 재생산은 젠더, 성정체성, 연령 등 소수자성에 따른 차별에서도 나타난다 [4]. 기존의 차별 연구들은 인간을 위계화하는 권력이 역사 속에서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깊게 뿌리 내렸으며, ‘열등한’ 존재로 구분된 인간들의 삶을 다양한 영역에서 억압하고 그들의 몸에 상처를 남긴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5]. 차별은 의사-환자, 노동자-고용주와 같은 개인 간의 만남에서도 발생하지만, 개인적 관계를 넘어 다양한 층위에서 전방위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차별은 문서화된 법이나 제도 수준에서 작동하기도 하며, 동시에 특정 소수자 집단의 구성원들이 지배 집단이 역사적으로 생산한 차별적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여 스스로의 능력을 폄하하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부정하게 만드는 것처럼 개인의 깊은 무의식 수준에서 작동하기도 한다. 차별은 인간 삶에 영향을 미친다. 차별을 경험하는 이들은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더 열악한 조건을 감내하게 된다. 건강한 출생과 존엄한 사망에서, 질 좋은 교육과 안전한 주거에서,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와 아플 때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에서 소수자 집단은 배제당하기 쉽다 [6]. 지난 30여 년간, 보건학 연구들은 다양한 연구 방법론을 이용하여 차별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해왔다. 기존에 수행된 연구들은 차별이 소수자 집단을 병들게 하고 병들게 된 사람들이 치료받지 못하게 하여, 그들이 더 낮은 삶의 질을 영위하고 더 빨리 사망하게 만든다는 결과를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 [7].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역사적 맥락에서 진행된 연구를 통해 드러난 이러한 결과는 사회적 환경이 인간의 몸을 병리적으로 바꾸는 과정을 보여주는 주요한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2) 한국의 장애인 차별장애인 차별은 장애인의 몸이 가진 생물학적 특성에 대한 정치적 이념을 통해 역사 속에서 합리화되었다 [8]. 비장애중심주의(ableism)는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능력’에 따라 위계화하고 등급을 나누고, 장애인의 몸을 생산적이지 못한 열등한 존재로 낙인찍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차등 대우를 정당화했다 [9]. 비장애중심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장애인은 비장애인을 표준으로 여기며 역사적으로 형성된 인간에 대한 믿음과 선호에 의해 그 가치가 판단된다. 한국에서는 장애인권운동의 성과로 2008년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 」 이 시행되며 법적으로 장애인 차별은 금지되었다. 장애인 당사자들이 입법 운동을 통해 이뤄낸 이 법률은 직접 차별만이 아니라, 간접 차별과 정당한 편의지원 거부 등을 포함하여 장애인이 삶 전반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2008년 법의 시행 이후 「장애인차별금지법 」 은 지속적으로 개정이 이루어져 왔다. 2010년과 2012년 장애인이 사법 절차에서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강화하는 조항이 추가되었고, 2014년에는 시각장애인에게 ‘점자·음성변환용 코드가 삽입된 자료’ 제공을 의무화하는 개정이 진행되었다 [10]. 하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후 17년이 지났음에도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된 사회와 역사 속에서 축적되어 온 차별은 여전히 장애인의 삶 곳곳에서 작동하고 있다. 법적 영역에서 부당함을 주장하거나 입증하기 어려운 차별이 삶 곳곳에서 장애인의 삶을 옥죄고 그들의 몸을 해치고 있다. 예컨대 2022년까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근거로 하여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된 사례 중 장애인 의료 접근성 차별행위로 판단된 사례는 단 1건으로 나타났다 [11]. 이는 의료서비스 영역에서 장애인 차별이 드물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차별의 부당함을 주장하기 어렵다는 점을 드러낸다. 한 연구는 의료서비스 이용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한 경우에, 장애인들은 긴 시간이 소요되는 차별의 입증과 소송 과정에 부담을 느끼고 그 과정에서 더 이상 의료 서비스를 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에 부당함을 공론화하기 꺼린다고 지적했다 [12, 13]. 한국에서 장애인들이 취업과정이나 직업을 유지하면서 겪었던 차별 경험을 연구하고 [14, 15, 16], 사회적 경험에서 배제되는 현상을 면밀하게 분석하며 [17], 미묘하게 드러나는 장애인 차별을 탐구할 뿐 아니라 [18] 장애인을 포함한 소수자 집단의 차별과 건강 관계에 대한 체계적 문헌 고찰을 진행하는 등 [19] 차별의 다면성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는 연구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서 장애인 차별에 관한 연구의 상당수는 장애인이 병원, 직장, 공공기관 등에서 직접 경험하는 구체적인 차별경험에 집중되어 있다. 개인이 부당한 일을 경험하고 인지하고 보고하는 사건과 상태에 집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