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가지(피스모모 두어스랩 교육연구팀장) *아래 보라색 글씨는 문아영 책임연구원의 말 “분단이라는 상황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평화라고 하는 주제로 2012년 9월에 평화교육 단체를 설립했어요. 활동하면서 한국 사회의 분단 문제와 평화 문제가 저의 실존을 다차원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러니까 반공 교육이나 군사주의 교육을 받았던 객체의 입장에서, 이제는 그 교육에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목소리를 내는 주체의 차원으로 전환된 부분도 있고요. 다차원성을 가지면서 분단 사회에서의 평화 교육 흐름을 성찰하는 것이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있었어요. 이게 여전히 비주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영이 박사학위 논문을 TEPI에서 공유한다고 해서 기다렸던 시간만큼 기대하는 마음으로 신청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아영은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바쁘게 움직이고 있기에 아영의 논문은 끝날듯 끝나지 않는 숙제와도 같아 보였다. 하지만 논문의 주제와 전체개요, 그리고 어떤 맥락에서 논문을 쓰고 있는지 살짝 공유해준 내용을 통해 아영이 왜 이다지도 오랜 시간 붙잡고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고, 완성될 논문의 내용도 궁금해졌다. 특별히 아영 자신의 삶과 맞닿아있는 주제라서 의미가 있었는데, 막스 반 마넨의 해석학적 현상학을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고민과 변화를 위한 교육자로서, 활동가로서 시도했던 것들을 연결하고자 했던 것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분단폭력은 '분단이 만들어내는 폭력적 활동과 구조와 담론', '분단을 명분으로 가해하는 행위', '분단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수많은 인권 유린과 억압의 행동' 등으로 정의되곤 하지요. 과거의 사건으로서 발생한 분단이 아니라 구성원에게 영향을 주고, 구성원에 의해 영향을 받아오며 변화해 온, 현재진행형의 분단 폭력성에 주목하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분단폭력을 수행하는 기제로서의 안보교육에 대해 성찰하고 분단을 넘어서기 위한 시도로서 그동안의 통일교육을 평가하며 평화교육, 탈분단평화교육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분단이라는 실존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모두의 경험이며 지금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분단은 지리적 경계만이 아니라 분단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이 분단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사회구조와 문화만이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일상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분단 수행성은 나의 일상과도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나를 통해서도 수행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중에 가장 충격적인 것은 매일 가지고 다니는 주민등록증이었다. 주민등록증이 언제, 어떻게, 왜 생겼는지 그리고 내가 왜 가지고 다녀야하는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도 질문하지도 않았다. 언제든지 경찰이 보여달라고 하면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줄 알았다. 분단이라는 상황에서 이러한 수행들은 나-타자/ 우리-그들/ 우리-적으로 인식하고 경계와 감시, 그리고 검열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을 모모라는 집단에 와서 ‘아차’하고 깨달았다. 국가는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법질서를 예외상태로 두고, 안보는 북한을 외부의 위협요소로 말하지만, 동시에 내부통치를 위한 기제로 삼는다. 분단수행성 연구자 홍민은 한국사회는 안보를 명분으로 예외상태를 일상화했으며, 일상화된 예외상태는 분단의 세계이고, 분단의 세계에서 모든 사람은 분단의 ‘호모 사케르(Homo Sacer, 누군가 죽여도 벌 받지 않는 존재)’로 전락되어서 ‘죽어도 싼 빨갱이’, ‘타도해야할 괴뢰’로서 호모 사케르로 양산되기도 배제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참 놀랍게도 한국사회에서 빨갱이라는 단어는 지금도 사회 속에서 등장하고 양산되고 있다. 국가안보는 모든 가치/존재는 희생해도 된다는 논리로 해석하고 타자에 대해 경계와 감시, 자기검열,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우리를 위협하는 존재일때 폭력이 정당화되는 시스템으로 작동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분단 수행과 탈분단 수행이라는 어떤 대립적 구도를 넘어서서 평화 수행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이게 이제 저의 핵심 질문이고요. 제 논문을 통해서 평화 수행의 가능성에 대해서 탐구하고 제언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한국사회에서 타자를 적대화하는 기존의 행위들을 반복하지 않고 평화와 공존의 세계를 실천할 수 있을까? 분단수행에서 탈분단 수행으로, 평화 수행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을 막스 반 마넨의 해석학적 현상학과 연결하고 제언하는 내용은 매우 놀라웠다. 솔직히 말하면 아영의 논문을 통해서 반 마넨의 해석학적 현상학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조금은 부끄럽기도 했지만 분단수행성과 평화수행성을 현상학과 연결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즐거움이 컸다. 현상학은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서 증명된 것만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모든 것을 과학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현상학자는 인간들이 해석하는 행위 또는 눈앞에 보이는 현상의 너머를 바라보고 들여다보는 행위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일임을 연구하기에 자신에 대한 끝없는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결국 반성이라는 과정으로 우리가 가진 편견, 전제, 이론 등 모든 지식의 판단을 중지하고 현상학의 목적인 본질을 밝히기 위해 열린 세계관으로 현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반 마넨은 해석학적 현상학을 교육적 관점으로 연결하는데, 피스모모 창립때부터 이야기한 파울로 프레이리의 교육학과 맞닿아 있어서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인간을 교육한다는 것은 반복적이면서 의식적으로 설계되어 있어서 행동으로 도출되는데, 국가/전문가중심,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전통적 교육은 학습자 스스로 사유하고 성찰할 수 없도록 한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긴시간 주입되고 수행해 온 ‘분단’을 해체하고 평화를 수행하는 힘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아영은 논문에서 한국사회에서 반공 교육이나 군사주의 교육을 통해서 분단 수행성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이와 같은 교육에 대해 문제 제기하고, 새로운 목소리를 내는 주체가 되는 것, 이것이 중단의 행위와 연결된다고 말한다. 당연하게 여겨져왔던 행위를 멈추고 현실을 약간만 기울여서 낯설게 보는 것, 비틀려는 시도가 분단 사회에서 평화 교육의 흐름으로 전환할 수 있는 시작이 될 것이다. 분단/안보의 이슈를 다각도로 보고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사유하는 존재들이 서로 연결되고 상호작용하는 관계로 확장될 때, 모두의 평화로 연결되는 세상을 상상하면서 기대하는 마음도 생겨난다. 물론 “평화수행을 추구하는 삶은 평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더 어렵게 만들면 만들지 쉽게 만들지는 않아요.”라는 말은 현실로 돌아오게 만들었지만 ‘어떻게 하면 탈분단 수행이 가능해질까’에 관심을 가지고 테피 정례회의에 모인 한분 한분이 있어서 참 다행이고 힘이 났다. 아영이 논문을 빨리 탈고해서 탈분단 수행의 프락시스를 도출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볼 수 있기를 바라고 평화운동의 핵심연구로써 읽혀지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